우리 집에 왜 왔니

많은 분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시작했던 ‘우리 집에 왜 왔니’가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늘 그랬듯 연재작은 완결을 찍고 나면 시원섭섭한 마음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이번 글도 무사히 완결까지 마침표 찍었구나 싶은 안도감과 제가 써놓고도 뒷이야기를 좀 더 보고 싶다~ 하는 그런 아쉬움이 늘 남는.. *^^* (자기애! 자기애!) 특히나 우리 집에 왜 왔니는 ...

- “왜 이렇게 못 먹어? 배고프다더니.” “때를 놓쳐서 그런가 봐. 너 더 먹을래?” 답할 틈도 주지 않은 용선이 제 몫의 초밥을 별이 앞으로 옮겼다. 젓가락 끝을 물고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던 별이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차 안에서 얘기할 때까지만 해도 분명 배고프다고 그랬었는데. 좀 더 서두를 걸 그랬나. 따뜻한 녹차 한 모금으로 입안을 정리한 용...

- “생일선물 뭐 사주지?” “목걸이?” “목걸이는 패스. 걔 목걸이에 진심이야, 괜히 어중간한 거 사줬다간 실망해.” “향수?” “취향 타지 않을까?” “그냥 돈 주자.”

- 바람이 불었다. 소란스러운 주변을 부드럽게 스쳐 지나온 산뜻한 바람이 켜켜이 쌓여있던 서러움을 훔쳐냈다. 가볍게 흐트러진 잔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긴 용선이 시선을 떨어트렸다. 여태껏 들었던 묵직한 고백이라든지 꾀부리지 않고 솔직하게 꺼내놓은 원망 같은 것에 비하면 별것 아닌 독백이었다. 마음에 담긴 것 중 가장 담백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놓았음에도 하마터면...

- 기척 없이 찾아온 밤이 새로운 설렘으로 가득했다. 낯선 공간에서의 적응을 완벽하게 끝마친 혜진이 한결 개운해진 모습으로 침대에 뛰어들었다. 고작해야 발 들인지 겨우 너덧 시간 쯤 지났을까 했지만 이미 충분히 정든 공간이었다. 앞으로 여기서 언니가 먹고 자고 한다는 거지. 입성과 동시에 주변을 꼼꼼히 스캔하며 예리한 눈을 했던 혜진은 얼마 못 가 기분 좋...

- “돈은 벌어다 어디 쓰게? 그냥 새로 사, 여기 있는 건 놔두고.” “내 짐 두고 뭐 하시게요-.” “독립하면 아예 안 들어오게? 너 가끔 오면 이 방 그대로 쓸 거 아냐. 정신 사납게 싸 들고 갈 생각하지 말고, 이왕 독립하는 거 새 물건 사. 짐 싸는 것도 일이야.” “언제는 아껴야 잘 산다더니.” “그래, 네 돈 주고 산 건 아껴 써. 이건 내 돈...

- “회사랑 얘기는 해 봤어?” “미국 지사 쪽 상황 알아는 봤는데, 지금 마땅한 자리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정확한 건 모르겠어.” “안되면 어쩌려고.” “여행인 셈 치고 좀 쉬어야,” “무슨 소리야?” 벌컥 열린 문에 대화가 뚝 끊겼다. 책상 위에 놓인 다이어리를 집어 들던 용선이 허리를 바로 세우며 몸을 돌리자 잔뜩 인상을 구긴 혜진이 우뚝 선 채 ...

- 하루하루 말라가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이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더군다나 그게 사랑하는 사람일 때엔. “안혜진, 와서 밥,” 쾅 소리 나게 닫히는 문을 물끄러미 보던 언니가 벙긋대던 입을 다문 채 그대로 돌아섰다. ‘안혜진! 어디서 문을 그렇게 쾅쾅 닫아, 너!’ 소리 없는 전쟁의 내막을 알 리 없는 이모가 카랑카랑하게 소리쳤다...

- “넋 나간 사람처럼 왜, 어어? 야, 너 얼굴 꼴이 왜 이래?” 강의실에 일찍 도착한 휘인이 전공 서적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목을 긁적였다. 안혜진, 오늘도 지각인가. 올 때 아메리카노 사 오라는 제 메시지에는 여전히 읽지 않음 표시가 떠 있었다. 설마 아직도 자는 거 아냐? 입술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휴대폰 액정을 노려보던 휘인이 흠, 하고 짧은 숨...

- 며칠 전부터 생각해온 선물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용선의 선물이 한발 앞선 터라 그 의미가 잘못 받아들여지면 어쩌나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단순하게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밤 조용히 이모의 방으로 들어가 봉투를 내민 별이가 머쓱한 웃음을 덧붙였다. ‘이번에 여행 갈 때, 보태쓰라구.’ 로션을 바르며 곁눈질하던 이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별이를 멀...

- 며칠 새 지켜본 집안의 공기가 이상했다. 기분 탓으로 치부하며 넘겨보려고 했지만 묘하게 불편한 분위기가 피부를 간지럽게 만들었다. 별것 아닌 일에 불이 붙어 살벌함을 만들어냈던 언니들의 지난 과거를 떠올려보면 오히려 평화에 가까운 상태인데도 이상하게 영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엄마, 언니들 싸웠나?” “싸웠대?” “아니, 제가 물었잖아요, 여사님. ...

- 소나기일 줄 알았던 비가 며칠간 줄기차게 이어졌다. 지난번 비는 잠깐의 봄비였나 싶을 수준이었다. 아직 봄꽃도 다 못 피었는데, 벌써 장마인가. 이러다 꽃이 피기도 전에 우수수 다 떨어져 버리면 어쩌지. 걱정될 정도로 쏟아붓는 비가 이제는 경이롭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밝아야 할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초저녁처럼 어두컴컴한 집이 ...